글번호
103627
작성일
2021.05.27
수정일
2021.05.31
작성자
suesue
조회수
825

2016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70주년 기념 특별전

2016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70주년 기념 특별전  첨부 이미지

 

 

 

▣ 전시기간

2016. 10. 25 ~ 2017. 01. 22

▣ 전시장소

동아대학교석당박물관

▣ 전시설명

 <탁본-광개토왕릉비>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광개토왕릉비 탁본 전시를 기념하고자, 중국 만주 지린성에 있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의 능비를 현지에 가지 않아도 실감할 수 있는 모형을 선보입니다. 6.39m 높이의 실제 크기로 제작된 이 비는 박물관 3층까지 닿을 만큼의 키를 자랑합니다. 특히 지역 학생들에게 광개토왕릉비를 체험할 수 있는 역사자료입니다.


   광개토대왕(374?412) 사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아들인 장수왕이 414년에 건립한 광개토왕릉비는 그의 업적과 후손의 뜻을 담은 1,775자의 문자가 거대한 돌 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고대 동아시아의 관계사를 담고 있어 희소성이 높은 사료로 손꼽힙니다.


   이 비는 1880년 발견된 이후 다양한 유형의 탁본으로 전해졌는데, 초기에는 수기로 베껴 적는 묵수곽전본이, 이후에는 묵수곽전본의 도구로 사용됐던 원석탁본이 소량으로 이뤄졌습니다. 동아대 석당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석회탁본 4면은 굴곡진 비면에 석회를 바른 후 불분명한 문자를 새겨 탁본하는 방법으로 글자의 왜곡이 이뤄진 다른 석회탁본보다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뛰어납니다.


   1905년에 탁본된 일본의 덴리대학 소장본과 가장 유사해 같은 시기로 추정되는 석당박물관의 탁본은 광개토왕릉비의 3면 1행이 탁출되어 있지 않습니다.  3면 1행의 31자 중 판독 가능한 글자는 2~3자에 불과한데 비 발견 당시 이끼 제거를 위해 능비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가 이뤄져 훼손이 심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광개토왕릉비의 제1면에는 광개토대왕의 시조이자 고구려의 국조인 추모왕, 유류왕, 대주류왕의 치세와 광개토대왕의 왕위 계승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면에는 광개토대왕의 정복활동이 연대순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3·4면의 비문에는 광개토대왕의 능묘를 지키는 수묘인에 대해 서술되어 있습니다.

 

<동아 70YEARS>

 

  뛰어난 서예가이자 문장가였던 동아대 설립자 석당 정재환 박사가 쓴 유묵인 '동좌문도'(同坐聞道)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짜임새 있으면서도 힘찬 서체가 대학의 수장이었던 박사의 살아생전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또한 1947년부터 1968년까지의 교수와 전임강사 발령 현황이 기록된 '학교법인 동아학숙 발령대장', 1970년 구덕캠퍼스 전경과 개교24주년 기념 음악회의 장면이 새겨진 실내용 가림막 등이 1946년 11월에 설립된 동아대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동아대와 맺은 인연, 기증유물>

 

  1959~1979년 기증 받은 문화재로 구성된 '기증의 시작'과 2009년부터 최근까지의 기증유물을 전시한 '기증의 활성화'로 기획되었습니다. 여의주를 잡으려 하는 용 한 마리와 신비로운 구름이 그려진 19세기의 조선 '백자청화운룡문항아리', 용과 봉황, 사신 등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이 특징인 고위 무관이 착용했던 18세기의 조선 '원수용 투구' 등이 대표 전시물이며, 민속유물 등이 첫 공개됩니다.

 

 

 

첨부파일
첨부파일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