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ctId=bbs,fnctNo=1676 RSS 2.0 26 건 게시물 검색 제목 작성자 공통(상단고정) 공지 게시글 게시글 리스트 목조보살좌상 작성자 suesue 조회 316 첨부파일 0 작성일 2023.02.03 ▣ 목조보살좌상 ◎ 수 량 : 1점 ◎ 크 기 : 전체높이 50cm, 어깨너비 23cm, 무릎너비 33.5cm,◎ 시 대 : 조선시대◎ 지정구분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0호◎ 지정(등록)일 : 2012.10.30. 목조보살좌상은 허리부터 서서히 구부려진 자세에 오른손은 가슴 위로 들고 왼손은 무릎 위에 두어 엄지와 중지를 맞댄 중품하생(中品下生)의 수인을 취하였다.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크고 무릎은 낮은 편이며, 양손은 별도로 제작하여 끼웠다.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목조보살좌상은 전체적으로 화려함이 배제되었으나, 부드러움과 섬세함이 돋보이는 우수한 작품이다. 특히 보관의 정면에 부착되었던 수정으로 만든 장식물과 통견의 착의법 등은 조선 후기 불상에서는 보기 드문 표현 기법들이다. 더욱이 통통한 얼굴과 후덕해 보이는 인상, 섬세한 보발의 표현, 귀 및 귀걸이 등의 표현에서 사실성이 드러나며, 큼직하고 대담하면서 볼륨감 있는 옷주름의 표현 등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목조보살좌상은 조선 후기인 17세기에 제작된 불상 중에서도 작품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다양한 17세기 목조불상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홍현주 필 산수도 작성자 suesue 조회 1176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5.07 ▣ 홍현주 필 산수도 ◎ 수 량 : 1점 ◎ 크 기 : 가로 33cm, 세로 26cm◎ 시 대 : 조선시대◎ 지정구분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3호◎ 지정(등록)일 : 2020.07.29 정약용(丁若鏞)의 그림으로 소개된 것이나 실상은 정조의 사위인 홍현주(洪顯周)의 소작이다. 화면의 우측 상단부에는 정약용이 직접 지어서 쓴 칠언절구(七言絶句)의 화제시(畵題詩)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軟?肥梧葉正舒 연한 떡갈과 기름진 오동의 잎은 막 펼치었는데此株枯木獨蕭疏 이 한 그루 고목만이 홀로 쓸쓸하게 서 있네范寬筆意徐熙墨 범관의 붓 놀림과 서희의 먹을 가지고好向殘山剩水攄 하찮은 산수 경치를 잘 묘사하였구려洌樵 열초다산의 시와 산문을 모은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제 6권에는 해거도위홍공현주(海居都尉洪公顯周)에 관한 시가 약 11편 가량 실려 있는데, 시의 대부분이 다산과 홍현주가 함께 가까운 교외에서 풍류를 즐기는 내용으로 그들 간의 교유관계를 유추해 볼 수는 자료이다. 이 중 「영명위의 화첩에 절구 네 수를 쓰다(題永明尉畵帖四絶句)」라는 시는 다산이 홍현주의 『화첩(畵帖)』에 칠언절귀 4수를 제화한 것이 문집에 수록된 것이다. 이 4수의 절귀 중 가장 마지막이 이 그림의 화제시이며, 이 그림은 홍현주의 화첩에서 분리된 한 면으로 판단된다.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 작성자 suesue 조회 1106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5.07 ▣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 ◎ 수 량 : 1점 ◎ 크 기 : 가로 37.7cm, 세로 24.9cm (반곽 - 가로 25.4cm, 세로 19.6cm)◎ 시 대: 조선시대 1558년(명종 13)◎ 지정구분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3호◎ 지정(등록)일 : 2019.05.29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는 1270년(咸淳 6) 남송(南宋)의 고승 지반(志磐)이 물과 육지에 외로이 떠도는 영혼과 아귀(餓鬼)를 위로하고 구제하기 위해, 불법(佛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의식인 수륙무차평등재(水陸無遮平等齋)의 기원·의식·절차 등을 수집, 정리하여 찬술한 불교의례서로,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수륙재의찬요(水陸齋儀纂要)·지반문(志磐文) 등으로도 불린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라는 서명으로도 많이 간행되었지만, 권수제(卷首題)가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로 함진재 소장본과 동일하게 되어 있는 판본만을 대상으로 살펴보면, 현전(現傳)되는 판본들 중 세조비 정희왕후(貞熹王后 1418~1483)가 세조·예종·덕종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1470년(성종 1)에 왕실 주도로 간행한 판본이 가장 이르고, 그 후 1649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간행한 것으로 나타난다.동아대학교 함진재 소장본은 1559년 갑사(岬寺)에서 판각한 경판으로 후쇄한 1권1책의 목판본으로 완본(完本)이다.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는 내용상 원래 6권이 완질이나 국내에서는 권1만 출간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이 책은 인출기록이 없어 정확한 인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동일한 경판으로 1573년(선조 6) 계룡산 군장암(軍藏庵)에서 인출한 것으로 알려진 관문사(觀門寺) 성보박물관 소장본과 대조해 본 결과, 묵흔이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책도 그 비슷한 시기에 인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전하는 판본들 중에는 1470년에 간행된 왕실판본 다음으로 간행되어 간행시기가 매우 이른 편이다. 그리고 동일 판본은 관문사 성보박물관 소장본 1책만 검색되었을 정도로 희구본(稀?本)이기도 하다. 비록 훼손된 부분이 다소 있으나 낙장은 없어서 내용의 전모를 알 수 있으며, 간기와 시주질, 간역질 등 명확한 간행 사항들이 기록되어 있어당시의 불교 서적 간행 상황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정선 필 청풍계지각 작성자 suesue 조회 1029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5.07 ▣ 정선 필 청풍계지각 ◎ 수 량 : 1점◎ 크 기 : 가로 43cm, 세로 29cm◎ 지정구분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2호◎ 지정(등록)일 : 2019.04.10 정선 필 청풍계지각 은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이 청풍계(淸風溪)의 풍경과 그 속에 자리 잡은 청풍지각(淸風池閣)을 표현한 진경산수화이다. 청풍계는 ‘맑은 바람이 부는 계곡’ 이란 의미로 서울 인왕산 기슭의 골짜기인 현재 종로구 청운동 일대를 말한다. 이 작품은 정선의 노년시절 무르익은 화법에 청풍지각을 중심으로 그려진 유일한 작품으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부산광역시지정 문화재자료에서 유형문화재로 승격되었다. 화면 우측에는 ‘청풍계지각(淸風溪之閣)’의 제목과 ‘겸재(謙齋)’라는 호가 쓰여 있어 정선의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작은 화폭에 청풍지각이 완전히 표현되어 있는 점이 정선의 다른 청풍계 그림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덕형 초상 초본 작성자 suesue 조회 1067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5.07 ▣ 이덕형 초상 초본 ◎ 수 량 : 1점 ◎ 크 기 : 가로 45.4cm, 세로 62.2cm◎ 지정구분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8호◎ 지정(등록)일 : 2019.04.10 이덕형 초상 초본 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그려진 공신초상화이다. 한음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은 예조참판, 대제학, 병조판서를 거쳐 영의정 등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한 재상으로 오성 이항복과 함께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작품은 얼굴 방향이 왼쪽인 좌안칠분상(左顔七分像)으로 세밀하게 묘사된 얼굴, 음영 없는 얕은 담채, 낮은 검은 색 관모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이덕형의 인품이 잘 드러난다. 얼굴은 섬세하게 그려진 반면 옷주름은 대담하게 표현되어 초본임을 알 수 있고, 현존하는 다른 이덕형 초상에 비해 예술적 가치가 돋보인다. 해주도 병풍 작성자 suesue 조회 1041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5.07 ▣ 해주도 병풍 ◎ 수 량 : 1점 ◎ 크 기 : 가로 41cm, 세로 140cm◎ 지정구분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3호◎ 지정(등록)일 : 2017.12.06 해주도 병풍 은 경물의 묘사는 매우 세밀하고 정교하여 당시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갖춘 화원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기와집의 정연한 필선, 피마준과 점묘법 등을 통해 이것이 도화서 화원의 수준작임을 알 수 있다. 해주가 감영이었던 관계로 자비대령화원의 화사군관 파견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라 파악된다. 현재 10폭 내지 12폭의 전체구성에서 일부 폭이 결실되었으나 해주성 내외의 경관을 담은 유일한 병풍그림으로, 화격이 높고 여러 장르가 결집된 표현양식 등의 회화사적 가치뿐 아니라 역사지리적, 학술적,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동아대 명현초상 일괄 작성자 suesue 조회 1162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5.07 ▣ 동아대 명현초상 일괄 ◎ 수 량 : 5점 ◎ 지정구분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2호◎ 지정(등록)일 : 2017.07.19◎초상별 크 기 송시열: 가로 33cm, 세로 55cm 제갈무후: 가로 24cm, 세로 34cm 공자: 가로 12cm, 세로 29 cm 주자: 가로 15.5cm, 세로 26cm 기자: 가로 14cm, 세로 27.5cm 동아대 명현초상 일괄은 성현(聖賢)을 그린 공자 초상(孔子肖像) 1점과 그의 제자, 주자 초상(朱子肖像) 1점을 비롯하여 기자 초상(箕子肖像) 1점, 제갈무후 초상(諸葛武侯肖像) 1점 그리고 조선의 유학자 송시열 초상(宋時烈肖像) 1점으로 모두 5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상의 현황은 화면구성을 비롯해서 사용된 바탕지와 장황방식까지 상이한 방식이 적용되었으나 표현기법과 함께 찬문의 서체는 5점 모두 동일하게 나타난다. 성리학과 예학에 조예가 깊고 문장이 뛰어났던 송시열의 후손 송내희의 글이 남아 있어 송시열 초상을 중심으로 동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림 상단 좌우로 찬문이 기록되어 있고, 특히 기자 초상의 뒷면에 ‘은진후송내희근서(恩津後宋來熙謹書)’라 적혀있어 초상화 5점 모두 송내희(1791-1867년)가 작성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송내희는 송시열의 후손으로써 동아대 본 5점의 초상을 송시열 집안 혹은 송시열을 모시는 서원에서 모셨던 것으로 짐작된다. 현존하는 명현초상에 비해 화격이 떨어진다. 다만 초상에 담긴 외적인 모습부터 전대에 전해져 내려온 명현초상을 고증하여 조성한 점과 더불어 송시열 후손, 송내희가 직접적으로 관여하여 초상이 완성된 점은 기록적 역사성을 부여 할 수 있는 19세기 작품이다. 단일 장소에 유존하는 명현초상 일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드문 예로 유림문화(儒林文化)의 일면을 확인시켜 주고 있어 시대성 및 회화사적 가치가 높다. 거제부도 작성자 suesue 조회 1029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5.07 ▣ 거제부도 ◎ 수 량 : 1점(8폭) ◎ 지정구분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35호◎ 지정(등록)일 : 2014.01.22 이 작품은 19세기에 제작된 군현지도로 거제도를 중심으로 주변 군현을 8폭의 병풍에 담은 지도와 풍속화가 결합되는 형태의 회화식 지도이다. 수리한 흔적은 없으며,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제1폭에 대마도계(對馬島界), 제7폭에 웅천계(熊川界), 통영계(統營界), 제8폭에 창원계(昌原界)를 담고, 화면의 중앙격인 4폭과 5폭에는 거제도의 중앙 관청을 그렸다. 사방에서 중앙 관청으로 이르는 길을 붉은 선으로 자세하게 그렸고, 화면 오른쪽의 지세가 왼쪽 보다 높은 산들이 많이 묘사되어 지형적 특성을 잘 반영하였음을 알 수 있다.화면 구성은 관아가 있는 읍치를 화면의 중앙에 배치하고 상하좌우 각 방향으로 산봉우리를 높이듯이 그리는 개화식(開花式) 구성 방식을 사용하였다. 산등성이를 따라 소나무를 촘촘히 배열하였고 화면 좌측에 많이 그려진 산은 피마준(披麻?)을 사용하여 산 표면의 질감을 표현하였다. 또한 행정 지명이 매우 상세히 수록되어 있으며, 여백을 이용하여 각 방면 등의 지명도 기재하였다.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거제부도는 조선 후기 수군의 모습과 거제도를 중심으로 주변 군현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며, 행정 지명 등이 매우 상세히 수록되어 있어 당시 거제도의 지리와 현상을 잘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진주성도 작성자 suesue 조회 1043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5.07 ▣ 진주성도 ◎ 수 량 : 1점(10폭) ◎ 크 기 : 세로 134cm, 가로 40cm◎ 지정구분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34호◎ 지정(등록)일 : 2013.10.23 진주성도 는 조선시대 번화한 도회이자 임진왜란 때의 충절의 고장으로 유명했던 진주성과 그 주변의 주요 건물과 시설, 그리고 남강 등의 자연 경관이 부감시의 방법으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총 10폭의 병풍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에는 18세기에 크게 유행했던 진경산수화풍이 매우 형식화된 모습으로 적용되어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19세기에 제작된 회화식 지도에서 보편적으로 확인된다. 진주성도 는 중앙 도화서 화원 중 경상도 병영에 ‘화사군관(畵師軍官)’으로 파견된 화원들 혹은 이들의 영향을 받은 지역 화가들에 의해 제작된 작품이라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지역 회화, 특히 경상도 지역의 회화 제작 관행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해석될 수 있다. 또한 규격이 크고 그림의 채색이 잘 남아있으며, 지명, 건물명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 전 경주 출토 승사리구 작성자 suesue 조회 1052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5.07 ▣ 전 경주 출토 승사리구 ◎ 수 량 : 3점 ◎ 크 기 : 높이 11.3cm, 입지름 9.7cm◎ 지정구분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4호◎ 지정(등록)일 : 2012.10.30 이 사리장엄구는 1967년 경상북도 경주시 율동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한다. 사리장엄구의 가장 바깥쪽 용기는 청동으로 만든 원통형 합이며, 그 안에는 보주형의 꼭지가 달린 뚜껑이 있는 유제(鍮製) 합이 봉안되어 있고, 내합 안에는 수정으로 만든 작은 병 모양의 용기가 봉안되어 있었는데, 사리는 수정으로 만든 병 모양 용기 안에서 2점이 확인되었다.바깥 용기인 청동제 합은 비교적 고식(古式)에 가까운 형식이긴 하지만 횡선이 굵게 떨어져서 배치되어 있으며, 고려시대의 합과 달리 단층으로 구성된 점은 조선시대이후에 제작된 것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유제 합의 뚜껑이나 꼭지의 형태는 조선시대 후기 유제 합의 형태들과 유사성이 있다. 특히, 18~19세기에 제작된 유제 합 중에는 이 합의 꼭지와 유사한 형식이 많이 보이므로, 꼭지의 형태는 비교적 늦은 조선 후기 금속제 합들과 비교해 볼 수 있다.수정으로 만든 병 모양 용기는 수정 덩어리를 깎아서 만든 것으로, 납작한 호(壺) 형식의 형태는 전(傳) 김시습 부도 출토 수정호의 형태와 유사하다. 전 김시습 부도 출토 사리호(舍利壺)의 연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대체로 15세기 후반 이후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경주 출토 승사리구 일괄품은 내부에 사리와 두정골(頭頂骨)이 함께 봉안된 승사리 장엄구로 봉안상태가 비교적 자세히 확인되는 중요한 유물이지만, 제작연대나 명문이 알려져 있지 않고 정확한 출토지도 알 수 없어 정확한 편년이나 유물의 성격을 파악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다.그러나 전반적인 그릇의 형태나 재질, 오방경의 구성 등 전체적인 특징으로 볼 때 조선 후기인 16~18세기에 제작된 사리구로 추정되며, 경상도 지역에서 출토된 비교적 완전한 세트를 갖춘 조선 후기의 보기 드문 승사리 장엄구이다. 계사명 사리구 작성자 suesue 조회 1095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5.07 ▣ 계사명 사리구 ◎ 수 량 : 4점 ◎ 크 기 : 백자합 - 높이 13.8cm, 입지름 14cm 놋합1 - 높이 6.5cm, 입지름 12.8cm 놋합2 - 높이 4.7cm, 입지름 10.2cm 놋합3 - 높이 6.5cm, 입지름 2.6cm ◎ 지정구분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3호◎ 지정(등록)일 : 2012.10.30 계사명 사리구는 승려의 묘탑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사리구 일괄로 총 4개의 용기로 구성된 조선후기의 유물이다. 경상남도 울주군 웅촌면 대복리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한다. 외함(外函)은 청화명문이 있는 백자이며그 안쪽에 납작한 금속제 원형 합 2점과 금속제 원통형 합 등 3점의 그릇이 봉안되어 있다.청화의 빛깔이 토청의 회청색, 태토가 조잡하여 지방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임.내합 2개는 합자형으로 조선 중기 이후에 유행한 것이며, 바깥쪽의 외함인 백자 합 동체 중앙부 표면에 청화안료로 쓴 “癸巳二月日 施主承表 兩主”라는 명문이 세로로 세 줄에 걸쳐서 쓰여 있어 조선 후기인 계사년에 시주자인 승표 부부가 발원하여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이 계사명 사리구는 정확한 제작연대는 알 수 없지만 명문 등을 통해 적어도 17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명문이 있는 조선 후기 경상도 지역 출토 사리장엄구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판단된다.조선 후기 사리장엄구는 아직까지 조사와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이처럼 세트를 갖추어 출토된 유물은 비교적 드문 편임을 고려할 때, 이 계사명 사리장엄구는 제작연대와 발원자의 이름이 밝혀져 있으며, 지금까지 출토된 예가 드문 비교적 완전한 세트를 가진 유물이라는 점에서 조선 후기 사리장엄구 연구에 자료적 가치를 지닌 유물이다. 동제 화엄경변상도 경상 작성자 suesue 조회 1027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5.07 ▣ 동제 화엄경변상도 경상 ◎ 수 량 : 1점 ◎ 크 기 : 높이 23cm, 가로 49cm, 세로 21.7cm◎ 지정구분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2호◎ 지정(등록)일 : 2012.10.30 동제 화엄경변상도 경상은 동(銅)을 주조해서 접합하여 만든 4각 탁자로, 천판(天板) 윗면에 고려시대의『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變相圖)를 새긴 독특한 금속제 기물(器物)이다.전체적인 형태는 4각의 낮은 호족반(虎足盤) 형상과 비슷하며, 천판과 운각, 4개의 동물 모양 다리, 그리고 양쪽 다리를 연결하는 족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양식적으로 볼 때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검은색 혹은 짙은 갈색을 띠고 있으며, 보존 상태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조선 후기에 제작된 금속제 경상은 현존하는 예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이 유물은 문화재적 가치가 상당히 클 뿐 아니라, 경상의 천판 상면에 새겨진 화엄경변상도는 해인사에 소장된 고려대장경의 변상도와 구도와 표현 방식이 상당 부분 비슷하여 고려대장경과의 관계도 알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아울러 조선 후기의 금속공예품은 범종(梵鐘)과 반자(半子) 이외에는 남아 전해 오는 종류가 많이 없는 상황에서 이 정도로 조각 솜씨가 정교한 예도 찾아보기 드문 작품으로, 고려대장경 변상도와의 관계 및 뛰어난 주조 솜씨, 독특한 기형, 희소성 등을 두루 지니고 있다. 시왕도 작성자 suesue 조회 1165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5.07 ▣ 시왕도 ◎ 수 량 : 2폭◎ 크 기 : 가로 126.5cm, 세로 155cm◎ 지정구분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1호◎ 지정(등록)일 : 2012.10.30 시왕도는 죽은 사람의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을 그린 불화인데, 이 시왕도 10폭 중에서 망자의 몸에 못을 찍는 정신지옥(釘身地獄)을 묘사한 제1진광대왕도와 추장지옥(抽腸地獄)을 묘사한 제2초강대왕도 등 2점이다. 2점 모두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이 시왕도는 채색한 구름으로 상단과 하단의 경계를 짓고, 상단 중앙에 의자에 앉은 시왕은 크게, 좌우의 권속은 작고 간략하게 표현하여 시왕의 존엄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화면 향 우측 상단에는 방제가 있어 해당 시왕의 이름을 알 수 있고, 하단에는 지옥 장면의 방제가 있어 해당 그림의 내용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일반적으로 조선 후기 시왕도들의 색채가 어둡고 탁한 반면에 이 작품의 채색은 붉은 색, 녹색 등의 원색과 흰색을 섞은 중간색 등을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화면이 밝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시왕과 주요 권속의 얼굴은 붉은 색을 띠고 있으며, 시왕의 권속 중 천동과 천녀는 이마와 코, 턱에 T자형으로 흰색으로 칠했는데, 이러한 기법은 조선 전기 왕실 관련 불화의 특징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선 후기 시왕도 중 제작연대가 가장 빠른 예로 생각되며, 작품의 크기도 다른 작품에 비해 큰 편이다. 석조관음보살좌상 작성자 suesue 조회 1283 첨부파일 0 작성일 2021.05.07 ▣ 석조관음보살좌상 (石造觀音菩薩坐像) ◎ 수 량 : 1구 ◎ 크 기 : 높이 37cm, 어깨 너비 14cm◎ 지정구분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9호◎ 지정(등록)일 : 2012.10.30 석조관음보살좌상은 부드러운 재질의 석재로 제작한 것으로 보이며, 팔꿈치 양측, 군의 등에 호분과 같은 백색의 안료가 남아 있고, 부분적으로 검은색의 칠과 금빛이 확인되어 원래는 도금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바닥 면 중앙에는 복장공이 노출되어 있는데, 복장유물은 남아 있지 않다.오른손을 왼손 위에 얹은 변형된 선정인의 수인을 하고, 머리에는 화불이 있는 원통형 보관을 쓴 단정한 모습의 석조관음보살좌상은 좁은 어깨, 어깨와 비슷한 너비로 전체가 사각형에 가까운 하반신의 신체 비례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신체적 특징은 우리나라에는 많이 전하지는 않지만 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전기까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유형이며, 수인의 형태는 고려시대 작품인 통영 안정사 소장 금동여래좌상 등 다수의 사례들이 남아 있다.또한 옷 주름은 간략하고 대칭적이며, 양손 아래로 반원형으로 늘어진 옷자락이 특징적인데, 이와 같은 반원형 옷 주름은 통일신라시대 후기부터 등장하지만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다시 나타나는 특징이다.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석조관음보살좌상은 하반신이 사각형에 가까운 신체 비례를 가진 점 등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에 이르는 시기의 불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고려적인 얼굴과 조선 초기를 전후에 표현된 승각기 또는 군의만 남아있는 가슴 표현 등을 고려하면 조선 초기를 넘지 않은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특히, 이 보살상의 신체적 특징은 드문 사례로 고려 석불 등에서 볼 수 있는데, 고려시대 불상 양식의 계승과 조선 초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동시에 보여준다 갑인춘 친정도(甲寅春 親政圖) 작성자 yoojin95 조회 1974 첨부파일 1 작성일 2018.05.18 갑인춘 친정도(甲寅春 親政圖) ◎ 시 대 : 조선(1734년) ◎ 크 기 : 44.5×29.2cm ◎ 지정구분 : 부산광역시지정 유형문화재 제103호 이 작품은 1734년 2월 9일 영조가 희정당(熙政堂)에 나가 친정(親政)한 것을 기념하여 도화서 화원에 의해 기록화 형식으로 제작된 8절면 화첩 형식으로 세필로 직접 그려졌을 뿐 아니라 건물의 배치와 묘사가 정연하고 안정되어 도화서화원의 지극히 섬세한 계화(界畵)의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 작품에 기록된 영조의 친정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 일치할 뿐 아니라 제작 년대와 도화서 제작이라는 제작처가 밝혀진 작품으로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또한 영조 대에는 많은 기록화가 제작되어 이른바 기록화의 황금기를 맞은 시대인데,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제작되어 이후 제작된 기록화의 전범(典範)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일 뿐 아니라 궁궐 건축의 변화 모습을 알 수 있어 건축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분청사기인화국화문사이부태호(粉靑沙器印花菊花文四耳附胎壺) 작성자 yoojin95 조회 1957 첨부파일 1 작성일 2018.05.18 분청사기인화국화문사이부태호(粉靑沙器印花菊花文四耳附胎壺) ◎ 시 대 : 조선 ◎ 재 질 : 자기 ◎ 크 기 : 외호 높이 38.9cm, 내호 높이 27.0cm ◎ 지정구분 : 부산광역시지정 유형문화재 제102호 이 분청사기인화국화문사이부태호는 기형과 인화기법으로 볼 때 조선 초기인 15세기에 충청도 지역에서 생산되던 분청사기로 추정된다. 태호 중 국보 제177호로 지정된 분청사기인화문태호 내외호 (粉靑沙器印花文胎壺 內外壺 )의 풍만한 항아리 모양의 외호와 홀쭉한 내호의 전체적인 형태와 동체 표면에 시문된 인화문 등은 본 박물관 소장 태호에서도 엿 볼 수 있어 내호와 외호를 다 갖추고 있는 15세기의 귀중한 분청사기 태호이다. 처음 1 2 끝